시장 파괴자로 급부상한 우버
하나의 차량 공유 서비스가 전 세계 택시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스마트폰 앱으로 일반 차량을 배정받을 수 있게 해주는 교통 중개 서비스 우버(Uber)다. 우버는 차량 이동이 필요한 사용자와 주변에 있는 우버 등록 운전사의 차량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다. 승객이 앱으로 차를 예약하면 예약 차량의 위치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는데, 승객은 앱에 등록된 운전자 정보를 미리 확인할 수 있고, 검색부터 요금 결제까지 앱으로 가능하다. 예약제이므로 승차 거부도 없다. 우버가 진출한 나라는 50개국 이상이다. 우버의 이러한 파괴력때문에 논란도 치열하다. 이용자들은 우버를 대체로 찬양한다. 쾌적한 실내, 친절한 운전기사, 편안하고 안전한 운행덕분이다. 실리콘 밸리는 우버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실리콘밸리는 우버가 '성공적 공유 경제 모델'이라며 획기적이고 대안적인 IT 기반 경제 패러다임을 열었다고 말한다. 세계적인 IT기업들은 경쟁하듯 우버에 적극 투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에 각국 정부와 기존 택시업계는 우버가 사라져야 한다고 말한다. 주요국 정부는 택시 면허 없이 영업하는 것은 위법이라 규정했고, 영업정지까지 내렸다. 우버는 진출하는 국가마다 이처럼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한국에는 2013년 7월 31일 상륙했는데, 이런 시각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2014년 12월 서울중앙지검 형사7부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우버의 설립자 트래비스 캘러닉과 렌터카 업체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우버로 IT업계의 가장 뜨거운 인물이 되다
우버로 세계적인 히트작을 낸 사람은 우버의 CEO 트래비스 캘러닉이다. 20대 초반 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수차례 파산과 소송, 탈세 혐의까지 겹치며 '우울한'시간을 보냈던 캘러닉은 우버 하나로 IT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 되었다. 그는 2014년 포브스가 발표한 미 400대 부호에 새롭게 진입했고, 집계된 그의 자산은 30억 달러였다. 캘러닉은 18세 때 첫 사업을 시작했을 만큼 사업가 기질이 다분했다. SAT 학원을 차렸고, 이때 공동 창업한 사람은 한국인이었다고 한다.
우버 창업자 캘러닉
캘리포니아주립대학 로스엔젤레스 캠퍼스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캘러닉은 몇몇 친구가 P2P 파일 공유 서비스 회사 '스카워'를 창업하자 여기에 합류했다. 한때 1,500만 달러 이상 투자를 유치할 만큼 승승장구 했으나, 저작권 소송 문제로 내리막길을 걸으며, 2000년 파산 신청을 하고 문을 닫았다. 이후, '레드 스우시'라는 콘텐츠 전송 회사를 만들었지만, 이 사업 역시 순탄치 않았다. 또한 동업자와의 문제로 갈등이 극에 달했는데, 갈등으로 인해 동업자가 회사를 떠났고 대부분 직원 역시 동업자를 따라 나섰을 만큼 캘러닉은 직원들에게 인기는 없었다. 동업자 토드가 떠난뒤 3년간이나 월급 없는 생활을 견뎠는데, 2007년 네트워크 컴퓨팅 기업인 아카마이에 회사를 2,300만 달러에 팔면서 백만장자가 되었다.
사람들이 직접 운전대를 잡을 일이 없도록 하겠다
캘러닉이 우버를 구상한 것은 2008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럽 최대 웹 컨퍼런스 '르웹 컨퍼런스'에 참석한 이후다. 교통이 불편하기로 악명 높은 파리에서 그는 택시를 잡지 못해 큰 불편을 겪은 후, 터치만 하면 차가 오는 스마트폰 앱을 만들 수 없을까 하는 아이디어를 탄생시켰다.
우버의 노이즈 마케팅과 캘러닉의 노회한 전략
우버를 둘러싼 사실이 발생할수록 우버의 가치는 높아지고 있다. 우버가 진출하는 나라의 언론 매체들은 현지 택시 산업과 충돌하는 우버의 사업모델을 소개한다. 행정부와 사법 당국은 법 저촉 여부를 살핀다. 기존 택시업계는 강하게 반발한다. 이런 과정들이 실시간으로 기사화되면서 우버는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지 않아도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른바 '노이즈마케팅'이라 할 수 있는데, 실제 2014년 6월 유럽의 주요 도시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택시 파업이 있던 날에 가입자 수는 평소보다 8배 이상 많아졌다. 수차례의 사업 실패 경험 때문일까? 캘러닉은 노회 하기도 한다. 그는 우버를 둘러싼 논란이 일 때면 이용자들에게 호소에 여론에 압박을가하는 '여론 투쟁'을 택했다. 이용자들의 이런 압력때문인지, 2013년 1월 캘리포니아 공공시설위원회는 우버를 택시사업자가 아닌 '교통망 업체'라는 새로운 범주에 포함시켜 합법화했다. 미국 콜로라도 주는 14년 6월 차량 공유 서비스를 하는 교통방업체로 인정하고 책임 범위를 정하는 법을 최초로 통과시켰다. 뉴욕과 워싱턴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우버를 운송 플랫폼으로 키우려 하는 캘러닉
캘러닉은 2014년 미국 경제전문지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 CNN 과의 인터뷰에서 "수도꼭지를 돌리면 물이 나오듯 버튼만 누르면 차량을 부를 수 있는 세상이 왔다"면서 "5분안에 자동차를 배달한다면 5분 안에 배달할 수 있는 건 매우 많다"고 강조했다. 우버의 이런 전략을 5분전략이라고 한다. "우버프레시" "우버 코너 스토어" "우버러시" 등을 시범 운영하며 사업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실험의 이유는 세계 각국에서 논란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버를 호출 택시 서비스 이상의 영역으로 진화 시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우버화되고 있다
캘러닉은 2017년 성추문등 막말 파문으로 결국 대표자리에서 사퇴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이사직으로 영향을 우버의 의사결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버가 모바일을 기반으로 한 생활 플랫폼 혁명에 불을 붙였기 때문일까? 이른바 우버화라는 말도 등장했다. 우버화는 라이센스가 없는 일반인이 재화,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플랫폼 비즈니스 모델을 통칭하는 말이다. 모바일 플랫폼 기반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신생기업들이 전 세계 비즈니스 판도를 뒤흔들 정도로, 우버화는 국경을 넘어 빠른 속도로 진행중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모든 것이 우버화되고 있다"라는 기사에서 우버화 물결이 전 세계를 덮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