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을 강타한 '마윈 신드롬'
2014년 9월 18일 미국의 거대 IT 기업들은 큰 충격에 빠졌다. 중국 최대 전자 상거래 업체인 '알비바바'가 이날 뉴욕증권거래소에서 기업공개를 하며 218억 달러의 자금을 조달해 상장 첫날 시가총액에서 경쟁자인 아마존을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첫 거래가 있었던 다음날엔 더욱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알비바바의 주가가 공모가보다 38.07퍼센트 오른 93.89달러로 장을 마감하며 시가총액 2,300억 달러를 기록해 페이스북을 제치고 구글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인터넷 기업이 된 것이다.
"천하에 놀아도 싫증나지 않는 게임은 단 하나 있는데 상거래하면서 돈을 버는 것이 그것"이라는 그의 말처럼 전자 상거래에 미쳐있는 마윈은, 1964년 중국 항저우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마윈은 학창시절 공부는 신통치 않았다. 하지만 한가지 잘하는 게 있었으니 바로 영어였다. 영어를 잘하는 이유가 재미있다. 대단히 엄격했던 마윈의 아버지는 툭하면 마윈을 꾸짖었다고 한다. 당하고는 못 참는 성격이었던 마윈도 말대꾸를 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대놓고 말대꾸를 하기 뭐해서 영어로 실컷 하고 싶은 말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영어 실력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컴퓨터 문외한이 인터넷 기업을 창업하다
오늘날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가로 성장했지만 사실 그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마윈은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서른 번도 넘게 거절당해봤습니다. 입대도 거부당했고, 경찰 모집에 떨어진 데가 KFC와 호텔 입사 시험에 모두 실패했죠" 대학 입시에서도 두 번이나 떨어졌고, 3수끝에 운 좋게도 항저우 사범대학의 영문과 정원이 미달되어 들어갔다. 일찍부터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공부보다는 학생회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항저우 전역의 대학 연맹 회장을 할 정도로 탁월한 웅변 능력과 리더십을 발휘했다. 30대 나이에 잘나가는 영어 강사 생활을 했지만, 1995년 미국 시애틀에서 처음 인터넷을 접한 후 그의 인생을 달라졌다. 마윈은 처음 인터넷을 접하고 두 가지 충격을 받았다. 하나는 너무 신기하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온라인 세상 어디에서도 중국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윈은 1999년 3월 자신과 직원들의 호주머니를 털어 마련한 50만 위안의 자금으로 알리바바를 창업했다.
알리바바의 글로벌 전략
처음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한 알리바바는 "예선을 거치지 않고 월드컵 본선으로 간다'는 구호 아래 국제화 전략을 추구했다. 당시 인터넷의 핵심 기술과 관련 기업들이 대부분 미국과 유럽에 있었고 중국내에서는 투자자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가 회사이름을 알리바바로 지은 것도 글로벌 시장 전략 떄문이었다. 전 세계 사람들이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을 알고 있으며, 언어가 달라도 알리바바라는 발음은 어느 나라에서나 거의 일치한다는 점에서 알리바바로 지었다. 마윈은 알리바바가 중국 기업이라는 사실도 최대한 감추었다. 세계화 과정에서 3류 기업으로 낙인 찍힐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코끼리'이베이를 물리치다
알리바바가 2002년부터 수익을 내기 시작하자 마윈은 2003년 7월에 1억 위안을 투자해 알리바바의 온라인 경매 사이트 타오바오를 설립했다. 타오바오는 중국어로 "보물을 캐다"라는 뜻이다.
타오바오가 등장하자 세계적인 온라인 경매 사이트 이베이의 CEO 맥 휘트먼은 타오바오가 길어야 1년 반도 못 버틸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며 중국시장에 개설한 '이베이이취'에 무려 1억 달러를 투입했지만, 타오바오는 창업한 지 2년 만에 이베이이취와의 경쟁에서 승리하며 중국 인터넷 경매시장의 1인자가 되었다. 타오바오는 철저하게 현지화 전술을 구사했다. 타오바오는 이베이이취와 계약을 맺지 않은 모든 인터넷사이트를 파고들었고, 이베이이취와의 취약점도 집요하게 공략했다. 당시 이베이이취는 불친절한 고객 응대로 원성이 자자했다.
중국에 신용과 상생의 비즈니스를 가치관을 심다
알리바바가 중국 전자 상거래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0퍼센트가 넘는다. 사실상 중국 시장을 석권한 상태라 할 만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성장한 비결은 무엇일까? 중국에 새로운 비즈니스 가치관을 심었다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짝퉁 공장'이라는 말이 떠돌 만큼 중국 사회에서 신용은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 가치였다. 마윈은 전자 상거래를 가로막는 최대의 난관은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거래에 대한 공포심이라 지적하면서 신용 시스템과 결제 시스템 구축에 매진했는데, 그렇게 해서 나온 게 소비자가 물건을 직접 받은 후 상대방에게 대금을 보내는 방식의 시스템이었다. 알리바바의 결제 시스템으로 널리 알려진 알리페이도 이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중소기업과의 상생 전략도 빼놓을 수 없다. 마윈은 중소기업과의 상생에 회사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생각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마윈은 150억 위안을 중소기업을 돕기 위해 내놓기도 했다. 마윈은 "인터넷 업계에서 48세의 나이는 이미 젊은 나이가 아니다'며 CEO에서 물러나 이사회 의장으로 남을 것이라 선언했다. 마윈은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알리바바의 미래는 탄탄대로다. 전 세계 1위 인구에 기반을 둔 성장 잠재력 때문이다. 세계전자상거래 시장의 패권을 두고 벌이는 아마존과의 싸움은 갈수록 흥미로워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