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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건강

한센병의 원인, 감염경로, 소록도

한센병이란?

'한센병이란 무엇인가?' 라고 물으면, '나병'이라는 대답이 되돌아 오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억지로 한센병이라고 할 필요가 있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나병」이라는 용어가 단순히 질병의 이름만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잘못된 지식에 근거한 편견과 차별적 의미가 내포되어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한센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센병의 원인 병원균인 “나균” 등 매우 예외적인 학술용어를 제외하고 이제는 대부분의 경우에서 「한센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한센병은 감염되는 병인가?

나균을 발견한 한센


한센병은 나균에 의한 만성 감염병이며, "감염되는 병"이라는 사실은 맞습니다. 나균은 결핵균과 같은 항산균으로 세균의 일종이며, 1873년에 한센(Gerhard Henrik Armauer Hansen,노르웨이; 1841-1912) 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우리는 인류 최초로 발견된 병원균인 나균을 발견한 그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나균에 의한 이병을 한센병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나균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같은 항산균인 결핵균과 매우 비슷한 모습과 세균적 특성이 있기는 하지만, 감염되어 발병되는 경우는 결핵에 비해 매우 적고, 단지 나균에 대한 면역 기능이 약한 경우에서만 한센병이 발생됩니다. 또 어떤 경우에는 발병한 후에도 면역 기능에 의해 자연스럽게 치유되는 일도 있습니다.


과거에는 한센병은 환자와의 긴밀한 접촉에 의해 쉽게 감염한다고 생각하였으나, 한센병에 대한 치료약이 개발되어 한센병 치료에서 이용하게 된 이후에는 어느 나라에서도 한센병이 있다고 해서 그들의 생활에 어떠한 제한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주 3). 역시 과거에는 한센병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을 때 한센병을 "유전병"으로 생각하기도하였는데, 이는 한센병에 감염되고 나서 발병할 때까지의 기간(잠복기)이 수년 내지는 수십 년으로 매우 길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감염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 유전병과 같이 생각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현대 의학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한센병은 분명히 유전병이 아니고 나균에 의한 만성 감염병입니다.




한센병은 무서운 병인가?

요즈음에도 한센병을 무서운 병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최신 치료법이 발달한 지금에도 충분한 치료를 제대로 받지 않아 안면이나 손 및 발에 심한 변형이 발생한 것을 보고 무섭다고 생각하는 것도 같습니다. 또 과거에 치료약이 제대로 개발되지 않았을 때는 불치의 병이라고도 말하고 있었으니까 두려운 생각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센병의 치료는 1940년대에 설폰제의 사용이 시작되어, 1983년 이후의 복합화학요법(주 4)에 이를 때까지 발전하여, 한 때의 "불치의 병"에서 이제는 "완치의 병"으로 바뀌었습니다. 현재는 한센병은 조기에 진단하여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후유증인 변형은 거의 남기는 일 없이 치유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화학요법이 아직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않아 발병 초기에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없었거나, 또는 병이 많이 진행하고 나서 화학요법을 받은 경우에는 한센병 자체는 완전히 치료된 후에도 얼굴이나 손, 발 등에 여러 변형(후유증)을 남기는 일이 있습니다.

정형외과나 성형외과에 의한 수술적 요법은 이러한 변형의 교정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만, 병이 발생하기 전의 모습으로 완전히 전혀 눈에 띄지 않게 교정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비록 변형이 있다 하여도 이미 한센병이 치료되었다면 감염의 우려는 전혀 없다는 것은 다시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처럼 한센병은 조기에 진단하여 조기에 치료되면 결코 무서운 병은 아닙니다.

한센병은 가벼운 병인가?

한센병은 잘 감염되지 않고, 치료로 확실히 치유되기 때문에 무서운 병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센병은 피부 외에 말초 신경도 침범해 얼굴, 손 발 등에 감각마비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손, 발에 감각마비가 있으면 뜨거움이나 아픔을 느끼지 못해 다치기 쉽고 화상도 쉽게 생길 수 있어, 상처가 쉽게 생기고 쉽게 악화되어 후유증을 남기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감각마비도 한센병을 조기에 진단하여 치료하면 심각한 수준으로 남지 않습니다.

진단과 치료가 늦어지게 되는 경우에는 얼굴이나 손, 발 등에 감각마비가 광범위하게 남기게 되어 어려가지 후유증을 남겨 환자의 삶의 질에 심각한 문제를 초래합니다. 게다가 현재로서는 이것에 대한 확실한 치료법은 없습니다.  

한센병을 감염의 우려가 없는 상태로 만드는 것은 최신의 한센병 치료약이 있기 때문에 매우 쉽지만, 감각마비와 같은 말초 신경의 장애와 이에 따르는 후유증을 막는 것은 조기에 치료를 시작하지 않는 한 어렵습니다.


한센병의 원인

한센병은 나균(M. leprae)이라는 세균의 의해 발생하는 만성 감염병입니다. 나균은 결핵균과 같은 항산균으로 현재까지 인공배양에는 성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나균의 증식 속도가 매우 느려서 병의 잠복기가 매우 길다고(5년~20년) 알려져 있습니다. 나균의 감염력은 매우 낮다고 알려져 있으며, 단지 치료를 받고 있지 않은 증상이 심한 한자와의 매우 긴밀한 접촉에 의해서만 감염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치료를 받고 있는 한센병 환자나 한센병이 다 나은 후 단지 후유증 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전염력이 전혀 없습니다.

한센병의 증상 

한센병은 피부와 말초신경의 병입니다. 한센병을 일으키는 나균은 주로 피부와 말초신경을 침범하여 피부와 말초신경의 증상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피부 증상은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언뜻 보아서는 진단하기가 어려운데, 가려움은 없으며, 감각(따뜻함, 차가움, 아픔 등)의 저하가 있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상처나 화상 등이 생기는 일이 있습니다. 말초신경 증상으로는 해당 신경의 감각마비와 함께 운동의 장애가 동반되는 일도 있으며, 진단이나 치료가 늦어지면, 주로 얼굴, 손 발 등에 변형(후유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한센병의 치료

한센병은 답손, 크로파지민, 리팜피신 등의 3가지 약을 병용하여 치료합니다. 이를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복합화학요법이라고 하는데, 이 치료를 적기에 치료하면 조기에 나균이 죽게 되어 한센병이 완치됩니다. 다만 조기 진단, 조기 치료 등의 조건이 갖추어 질 때 후유증을 비교적 적게 남기게 되며, 내성균도 만들지 않게 됩니다. 물론 병을 치료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의 상태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진단 시점에 나균이 많이 있는 다균형 인 경우에는 수년, 나균이 적은 희균형 인 경우에는 2년 여간의 투약으로 완치됩니다.



다음은 소록도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소록도

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속하는 섬다. 섬의 이름은 그 형상이 작은 사슴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고흥 반도 끝의 녹동항에서 배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다. 2009년 3월 3일에는 소록대교가 개통하여 육로로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기원은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 나 요양원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분리·수용하기 위한 수용 시설로 사용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수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한센병 환자들은 4대 원장 오 마사스에가 환자 처우에 불만을 품은 원생에게 살해당할 정도로 가혹한 학대를 당하였으며, 강제 노동과 일본식 생활 강요, 불임 시술 등의 인권 침해와 불편을 당했다. 소록도 안에는 일제 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 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록도 검시실, 감금실과 한센병 자료관, 소록도 갱생원 신사 등 일제 강점기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건물과 표지판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수녀로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던 고흥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사택이 있다. 

검시실은 사망한 한센병 환자를 검시하는 해부실로 사용됐다. 현재 건물 안 내부에는 당시 검시대로 사용했던 차가운 흰 돌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고, 벽쪽으로는 수납장이 그대로 세워져 있다. 사망한 모든 환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곳에 눕힌 채 꼼짝없이 해부당해야 했다. 그리고는 화장 후 납골당에 유골로 안치됐다. 이러한 일로 소록도 환자들은 '3번 죽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첫 번째는 한센병을 얻은 것이요, 두 번째는 죽은 후 해부당하는 것이요, 세 번째는 장례 후 화장당하는 것이다.

감금실은 1935년 제정된 조선나예방령 규정에 의해 설치됐으며, 일제강점기 인권탄압의 상징물이 되었다.

소록도 병원은 해방 후에도 한센병 환자의 격리 정책을 고수하여 환자 자녀들이 강제로 소록도 병원 밖의 학교에서 공부해야 하였으나, 이후 한센병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한센병 치료 및 연구, 요양 재생 등을 기본 사업으로 하는 요양 시설로 바뀌었다. 또한 1965년 부임한 한국인 원장으로부터 과일 농사, 가축 사육 등의 기술을 익혀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으며, 일부는 소록도 축구단을 결성하여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완화하였다.


소록도는 섬의 전체가 국유지로 국립소록병원으로 지정돼 있으며, 일반 주민은 거주하지 않으며 대부분 섬 주민은 국립 소록도 병원의 직원 및 이미 전염력을 상실한 음성 한센병 환자들이다. 또한 환자의 대부분은 65세를 넘긴 고령자이다. 환자들의 주거 구역은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병원의 직원 등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거주 하는 관사지대(소록리 1번지)와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소록리 2번지)로 나뉘며 병사지대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