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T/유튜브

유튜브의 탄생 히스토리, 창업자, 성공 비결


동물원에서 시작된 유튜브의 역사

2005년 이른 봄 자베드 카림은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친구들을 방문했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그 도시의 유명한 동물원에 간 그는 코끼리 우리 밖에서 컴팩트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카림은 친구들에게 이런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 무작위로 찍고 싶은 비디오 목록을 적어뒀는데 그중 하나가 동물원에서 유치하게 동물 소개를 하는 비디오였죠." 카림은 친구 야코프 라피트스키에게 자신을 좀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유튜브 최초의 비디오

그는 18초짜리 동영상 서두를 이런 말로 장식했다. "좋아요. 자 이제 우리는 여기이렇게 꼬끼리들 앞에 있습니다. 이 친구들이 멋진건 정말정말 긴 코를 갖고 있다는 거죠. 정말 멋지죠. 더 말할 필요도 없어요." 코가 커서 정력도 좋을 거라는 유치한 농담이 인터넷의 한 역사가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카림은 방글라데시 출신의 연구원과 독일 생화학 교수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로부터 5년 전인 2000년 카림은 대학을 중퇴하고 온라인 결제 플랫폼 페이팔 개발에 동참했따. 카림은 페이팔의 초창기 개발자 중 한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가 두 친구 채드 헐리와 스티브 첸을 만난 곳도 페이팔이었다.


헐리와 스티브 첸


2004년 말에 카림과 헐리 그리고 첸은 페이팔을 떠났다. 그 후에도 세 사람은 자주 만나 창업 아이디어들을 주고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더 나은 비디오 경험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온라인에 비디오를 업로드하거나 보기가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웹사이트에 비디오를 업로드해야 하고 링크를 제공해 줘야 사람들은 그 비디오를 다운로드 할 수 있었다. 더구나 그 비디오를 보려면 해당 비이오 플레이어가 설치되어 있어야 했다.


그 모든 골치 아프고 번거로운 일을 거쳐야 하는데도 온라인 비디오 공유 네트워크는 생겨났다. 이것은 사람들이 휴대와 검색이 가능하며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비디오 솔루션을 원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2004년 인도양에서 비극적인 쓰나미가 발생했을 때는 핸드폰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 같은 비디오 촬영 장치들에 의해 전대미문의 규모와 다양한 관점으로 쓰나미 참사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필요한 모드 기술들이 속속 등장했다. 카림과 헐리 그리고 첸은 최대한사용하기 쉬운 디자인을 만들어 냈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확대해 나갔다. 다행히 헐리는 페이팔의 오리지널 디자이너이자 사용자 인터페이스 전문가였고, 첸과 카림은 페이팔의 컴퓨터 시스템 구조팀에서 수백만명이 사용할 수 있는 온라인 결제 플랫폼을 확대하는 작업을 했다. 그러나 당시 이런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던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비메오와 구글 비디오 같은 사이트들도 막 개설됐던 것이다. 그래서 서둘로 비용 호스팅과 수백 가지 파일 유형의 트랜스코딩 작업등에 착수했다. 나중에 헐리는 농담삼아 그게 얼마나 복잡한 작업인지 알았더라면 손도 대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그들은 처음에 데이트 사이트를 만들 생각이었다. 그래서 캐치프레이즈도 "채널에 맞춰 연결하라" 였다. 사이트의 첫 디자인에는 보고 싶은 비디오를 고르는 기능도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성별과 '차고 싶어 하는' 성별 및 나이를 선택하면, 유튜브가 무작위로 적절한 데이트 상대를 골라주는 식이었다. 



유튜브의 첫 테스트 서버를 구축한 뒤 카림은 샌디에이고 동물원에서 녹화한 그 비디오를 업로드 했다. '동물원에서의 나'라는 제목을 붙여서 말이다. 4월 23일 테스트 비디오인 '동물원에서의 나'는 유튜브 최초 공식 클립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아주 느릿느릿 진행되었다. 비디오도 몇 안 됐고, 그나마 상당수가 카림이 녹화한 비행기 클립뿐이었다. 동영상을 늘리기 위해 광고를 내고, 스탠퍼드 대학교 캠퍼스에 전단지도 붙였지만 사람들은 유튜브를 데이트 사이트로 이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곧 데이트 관련 기능을 모두 없애 버렸다. 


그리고 그해 조회수를 늘리기 위해 관련 비디오 항목을 신설했다. 그리고 더 쉽게 자료를 공유할 수 있는 도구들을 추가하고, 유튜브 플레이어를 자신의 사이트에 넣을 수 있게 하는 등 일부 개편을 단행했다.  



웹사이트 개편은 효과가 있었다. 웹사이트가 커가기 시작하면서 매트릭스를 연구하던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2006년에 대해 카림은 이렇게 기억했다. "2주마다 하나씨 큰 인기를 끄는 비디오 클립이 나타났습니다. 워낙 인기가 많아서 다른 비디오 클립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정도였죠." 그러다 비디오가 늘어나면서 히트작이 나올 가능성도 커져서 그 격차 또한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유튜브는 명실공히 그 당시 가장 빠른 속도로 커가는 웹사이트였다.


물론 '동물원에서의 나' 비디오는 결코 히트작이 아니었다. 10년 전에 자신이 만든 사이트가 훗날 얼마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될지 알았더라면, 코끼리를 빗댄 유치한 농담 대신 뭔가 보다 심오한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그 물음에 그는 답했다.

"첫 번째 비디오에 대해 별 아쉬움은 없습니다. 유튜브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방송할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비디오니까요. 그 가치는 시청자들이 결정할 것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