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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생활정보

영국 잉글랜드 차이점

 

영국은 UK로 표기하고 유나이티드 킹덤이라 말하는데요. 사실 풀네임은 Unt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 Ireland, 우리말로 번역하면 "그레이트 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입니다.

 

여기서 연합왕국이라 함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그리고 북아일랜드 4개 지역을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아 이 4개 국가를 묶어 영국이라고 하는구나 라고생각이 드는데, 축구를 보다보니 베일이 이끄는 웨일스가 몇십년만에 월드컵에 진출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잉? 

 

잉글랜드도 월드컵에 나가고 웨일스 나가면 이게 대체 뭐 어떻게 돌아가는 건가요? 오늘은 이에 대한 정확한 개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 영국의 4개 영토

2. 4개영토가 어떻게 1개 국가가 되었는가?

3. 연합국의 갈등

4. 스코틀랜드의 독립 요구 

 

 

1. 영국의 4개 영토

 

 

 

1) 잉글랜드 : 인구 83%

 

 

잉글랜드의 수도는 '런던'입니다. 우리가 아는 영국하면 떠오르는 것이 바로 잉글랜드이죠.

 

2) 스코틀랜드 : 인구 10%

 

 

스코틀랜드의 수도는 '에든버러'입니다. 스코틀랜드 하면 남자들이 치마입은게 생각나죠. 킬트치마라고 해서 스코틀랜드의 정통 의상입니다,

 

3) 웨일즈  : 315만명 

 

 

수도는 카디프입니다. 평야가 넓어 목축 양모가 많이 생깁니다.

 

4) 북아일랜드  : 190만명

 

수도는 벨파스트입니다. 4개 자치국중 영토가 가장 작고, 인구도 가장 작습니다. 아일랜드 섬중 영국 자치령인 지역입니다. 

 

위 4개국가는 각각 피파에 따로 가입되어 있으며 각기 독립된 의회를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서로를 오갈때 여권이나 비자가 필요한 것은 아니죠. 따로 또 함께 느낌인데요.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2. 4개영토가 어떻게 1개 국가가 되었는가?

 

스코틀랜드, 웨일즈, 잉글랜드가 속해있는 영국의 본토에는 과거 켈트족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독일 북서부에 살던 앵글로 색슨족이 켈트족을 침공했고, 앵글로 색슨족이 현 잉글랜드 지역을 장악합니다. 그래서 켈트족은 웨일스, 스코틀랜드 아일랜드로 쫒겨납니다.  그리고 도망간 켈트족은 토착민과 융합해 각기 새로운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11세기 : 프랑스 노르망디 공작이 잉글랜드를 복속했고, 스코틀랜드를 자신의 밑으로 예속시킴

12세기 : 잉글랜드(헨리2세)가 아일랜드를 침공하고, 아일랜드를 속국으로 만듦.

13세기 : 잉글랜드 에드워드 1세가 즉위하고 팽창주의 선포. 웨일즈를 병합시킴, 스코틀랜드 역시 속국으로 만듦

16세기 : 헨리 8세가 종교개혁 일으킴. (캐서린 왕비와 이혼하기 위해 로마가톨릭에서 성공회로 종교개혁을 한것임)

 

이후 엘리자베스 1세대에 계속 가톨릭을 믿고 싶어하던 아일랜드와 잉글랜드는 전쟁을 하게 됩니다. 결과는 잉글랜드의 대승이었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왕들은 혼인으로 혈통이 얽혀 있었는데, 후사가 없는 엘리자베스 1세가 죽자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왕을 겸하게 되었습니다.

 

제임스 6세는 스코틀랜드에서는 제임스 6세였지만, 잉글랜드에서는 제임스 1세가 되었고, 동일한 군주 아래 2개 국가가 결합을 하게 됩니다. 

 

1707년 : 연합법 제정

 

결국 1707년 스코틀랜드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이 합병하여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이 될 것을 결의합니다. 

 

1801년 : 그레이트 브레튼 아일랜드 연합국

 

1801년에는 속국이었던 아일랜드까지 합쳐져서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 로 연합국의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지금과 거의 비슷한 이름이 되었네요.

 

 

3. 연합국의 갈등

 

여러나라가 사실상 1개의 연합국이 되었는데요. 갈등은 오히려 심화되었습니다. 특히 그레이트 브리튼 왕국은 침략을 넘어 아일랜드의 농산물을 수탈했습니다. 수탈로 인해 먹을께 없었던 아일랜드인들은 감자를 주식으로 삼는데요. 

 

 

1845년부터 1850년대까지 유행한 감자역병 때문에 감자씨가 말라버려 대기근에 허덕이게 됩니다.  이 당시 무려 100만명이 사망합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국민들을 케어해야할 중앙정부는 오히려 "신의 뜻을 거스른 아일랜드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대기근으로 인해 아일랜드 인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주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무려 200만명이 미국으로 이주해 터를 잡게 됩니다. 

 

참다 못한 아일랜드는 1919년부터 1921년 아일랜드 독립전쟁을 벌이고 영국과 합의해 북아일랜드를 뺀 영토를 들고 독립을 하게 됩니다.

 

이로인해 드디어 우리가 현재 영국을 일컫는 "Unt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 Ireland"가 탄생하게 됩니다. 

 

 

4. 스코틀랜드의 독립 요구 

 

스코틀랜드는 꾸준히 독립을 요구하는 상황입니다. 사실 양국은 300년 넘게 약간은 애매한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해오고 있었는데요.  1970년대 스코틀랜드에서 북해유전과 천연가스가 발견되면서 독립을 할수 있다는 명분이 생겨납니다.

 

1) 1997년 : 스코틀랜드 독자 의회 설립

 

하지만 영국 전체 원유 및 천연가스 자원의 95%가 스코틀랜드에서 생산되기 때문에 중앙정부는 분리독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습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잉글랜드에 대한 반감이 점차 커져갔습니다. 결국 1997년 자치 의뢰 설립을 위한 주민투표가 실시됐고, 70%가 넘는 주민들이 자치의회에 찬성표를 던지며 스코틀랜드는 독자적인 의회를 갖게 되었습니다. 

 

2) 2011년 : YES 스코틀랜드

 

 

 

2011년에는 스코틀랜드 국민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예스 스코틀랜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독립을 하면 부유한 복지국가가 될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게 되면서 독립에 대한 더욱 여론이 들끓게 됩니다.

 

3) 2014년 : 스코틀랜드 분리 독립 투표 실시

 

결국 2011년 독립에 대한 주민투표 법안이 통과되었고 2014년 주민투표가 실시되었습니다.

 

 

결과는 찬성 44.7% / 반대 55.3%로 부결됩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영국은 황당하게도 유로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법안이 통과되었습니다.

 

 

스코틀랜드는 62%가 브렉시트를 반대했으나, 잉글랜드와 웨일스는 브렉시트에 찬성표를 던졌죠. 때문에 영국은 EU에서 탈퇴할수 밖에 없었고, 이후 스코틀랜드 어업은 높은 관세탓에 EU시장을 잃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스코틀랜드는 심사가 뒤틀릴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영국은 코로나19의 최대 피해국으로 중앙정부의 안일한 대처에 스코틀랜드인들은 완전히 실망을 하게 되죠. 

 

영국 보리스 총리

 

이로 인해 또다시 독립을 해야한다는 말이 정치권에서 오르락 내리락 하는 중입니다. 물론 영국의 보리스총리는 국민투표는 적어도 한세대에 한번만 치러져야 한다며 선을 그었으나, 스코틀랜드의 다수당인 국민당은 다시한번 분리독립 국민투표를 추진중입니다. 

 

현재 스코틀랜드의 국민당은 64석을 가져가 과반에 1석이 모자라지만, 분리독립을 지지하는 녹색당이 8석을 차지함으로써 사실상 과반을 달성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영국정부와 스코틀랜드 정부 모두 방역에 집중하자는 상황이며, 코로나19 종식 이후에 상황이 진전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2차 반리독립과 관련해 대법원까지 가는 법정 다툼이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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